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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능] 일 때문에 가정을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한다
복지국가SOCIETY
15년 10월 20일    1543
image:    이권능2_2.jpg   Size(44 Kb)

이권능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실장)


현재 우리나라에서 근로생활과 가정생활이 양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이견이 없다.  일-가정 양립은 개인이나 가족 차원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핵심 의제가 되었으며, 현 정부의 첫 여성가족부 장관은 취임연설에서 “일하는 엄마 대신 국가가 엄마가 되어주겠노라”고 선언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2000년대 이후 확산된 ‘저출산 위기’에 추동된 바가 크다. 2002년 합계 출산율이 1.17명으로 OECD 국가들 중 꼴찌가 되었고, 이후에도 줄곧 1.2명 전후의 수치를 유지하면서 심각한 상태에 처해 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지난 20년 동안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들이 많이 도입되었다. 여성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90일 간의 출산휴가와 남성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30일 간의 배우자 출산휴가(아버지의 달, daddy month), 초등학교 취학 전 자녀를 둔 노동자들에게 1년 동안 주어지는 육아휴직과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출산한 비정규직 여성근로자의 고용안정과 업무효율 유지를 위한 임신∙출산 후 계속고용지원금 제도, 근로자가 가족(부모, 배우자, 자녀 등)의 질병∙사고∙노령 등의 이유로 휴직할 수 있는 가족돌봄휴직제 등은 우리나라가 형식상으로는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제도들을 상당한 수준으로 구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일-가정 양립의 현 주소


이러한 제도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일-가정 양립정책은 적지 않은 한계들을 보여주고 있다. 유럽에서는 어린 자녀를 둔 여성들의 고용비율이 80%인 반면, 한국의 경우는 50%를 넘기기 어렵고, 특히 영아를 둔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30%에 불과하다. 왜 이런 차이가 날까? 우선 육아와 가정에 대한 책임이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주어지고 있는 전통적 문화 때문이다. 이러한 관습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여성의 교육수준 증가로 직업을 갖고 경력을 쌓는 것에 대한 기대와 열망이 커졌고(실제로 2008년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남성을 넘어섰음), 이로 인해 실제 경제활동참가 수준도 꾸준히 증가해 왔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게 되면 전통적 편견이 작동하여 여성의 경력을 단절케 하고 경력이 단절되어 급격하게 경제활동참여가 줄어들고 만다. 같은 비용을 지불하고 동일한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에 따른 불평등이 강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일-가정 양립의 조건 중 하나인 근로시간에서 발생한다. 최근 OECD는 ‘삶의 질(well-being)’에 주목하여 더 나은 삶(Better Life)을 보여주는 다양한 영역에서의 지표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일-가정 양립(work life balance) 영역으로 사용되는 지표인 ‘주당 50시간 이상 일하는 장시간 노동자의 비율’이다. 우리나라에서 주당 50시간 이상 일하는 장시간 노동자의 비율은 22.48%로 36개국 중 최하위 군에 속한다. 노동시간만을 본다면, 1인당 연간 평균노동시간이 2,090시간으로 전체 OECD 국가들 중에서 멕시코를 제외하고는 가장 길다.


가장 큰 한계는 현행 제도들이 보여주는 대상의 협소함에 있다. 출산과 양육은 모든 가정에서 마주치게 되는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위험임에도 불구하고 현행 출산∙육아휴직제도는 고용보험에 가입한 근로자만(피보험기간이 180일 이상인 임금 근로자)을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학생, 실업자, 자영업자 등과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비정규직들은 원천적으로 이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특히 고용보험 피보험자 비율이 전체 취업자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현행 제도의 한계는 명확하다.


마지막으로 제도의 사용이 저조하다는 문제가 있다. 여러 제도들을 사용할 수 있는 자격이 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자신의 휴직이 동료들의 업무 부담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육아휴직을 쉽게 선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11년 기준으로 출산휴가 신청자의 경우 90,290명인데 반해, 육아휴직 신청자는 58,137명으로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특히 이 중에서 남성 신청자는 1,402명으로 전체의 2.4%에 불과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나 가족돌봄휴직제 등의 제도를 잘 모르고 있다. 2013년 조사에 따르면, 이 제도들을 알고 있는 근로자의 비율은 40%를 넘지 않았다.


일-가정 양립을 위한 새로운 정책 방향


아내가 행복하지 않다면 남편 또한 행복할 수 없다. 엄마가 행복하지 않으면 그 가정의 모든 구성원들도 행복할 수 없다. 따라서 남편이 행복하기 위해, 그리고 가정이 행복 속에서 일상을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여성이 행복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일-가정이 양립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일-가정 양립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의 틀과 이에 기초한 방향성이 새롭게 제시되어야 한다. 우선 일-가정 양립은 여성의 관점이 아니라 인간이 갖는 보편적 측면들에 초점을 맞추어서 고려해야 한다. 여성도 인간으로서 일을 하고 싶은 욕구를 갖고 있으며(노동의 본능), 이를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자 한다. 하루 종일 한 가지 종류의 일만 하는 것보다 여러 종류의 일을 함으로써 만족과 행복의 크기를 키울 수도 있다.


인간이라면 살아가면서 어떠한 것을 원하게 되고 무엇을 충족시켜야 하는지를 고려한다면, 일-가정 양립이 왜 타당한 것이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는지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보편적인 것들이 가정에서 그리고 일터에서 성적 차이라는 기준에 의거하여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된다. 즉 일-가정 양립은 이러한 성적 차별과 성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또 하나의 주의해야 할 관점은 일-가정 양립은 단지 개인이 열심히 일터와 가정을 오가면서 역할을 수행한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가정이 양립되기 위해서는 개인이 아닌 사회적 차원에서의 여러 조건들이 구비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근로시간의 단축은 기업이 인정해야 하는 것이고 국가가 기업으로 하여금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조정하거나 강제해야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무엇보다도 통합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출산은 그것을 위한 조건이 마련되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므로 출산율 제고는 육아지원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육아를 위한 비용을 지원하거나 관련 시설을 지원하는 것에 더해서 여성의 고용에 친화적인 고용정책, 법정근로시간 단축이나 기간제 고용 같은 근로시간정책, 도시 및 주거정책 등을 통해 결혼과 출산에 적합한 물리적 환경을 제공하는 것 등이 통합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일-가정 양립을 위한 구체적 수단


그렇다면, 이러한 관점과 틀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정책수단들이 도입 또는 강화되어야 할까? 첫째, ‘가족보험’의 도입이 필요하다. 남녀의 일-가정 양립을 가장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출산 및 육아휴직제도가 실효성을 갖도록 해야 한다. 앞서 지적했듯이 현행 제도는 고용보험의 틀 속에 놓여 있어서 출산·양육이라는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위험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즉, 비정규직, 자영업자, 학생, 실직자 등은 아무런 보장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행 고용보험이 아닌, 대상자의 포괄범위를 최대화한 (가칭) ‘가족보험’과 같은 별도의 사회보험을 도입해야 하며, 이 보험의 재원은 회사가 주로 담당하고 일반 조세로도 일부 충원하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스웨덴은 1974년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제도를 ‘부모보험’으로 통합해 별도의 사회보험 제도로 운영하고 있으며, 프랑스도 마찬가지이다.


둘째, 노동시간의 단축이 필요하다. 사실, 기준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운동의 고전적인 의제였다. 처음에는 노동자의 건강 및 안전을 위해 제기되었지만, 지금은 일-가정 양립 또는 근로생활과 가정생활의 균형을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긴 노동시간은 일-가정 양립과 결코 ‘양립’할 수 없음이 많은 연구들의 결과이며, 이미 유럽에서는 1990년대를 전후로 일-가정 양립을 위해 노동시간 단축을 정책적으로 시도하였다. OECD 국가들 중 최장 노동시간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가장 절실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셋째, 남성들의 출산휴가(아빠의 달)와 육아휴직을 강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할당제로 바꿔야 한다. 즉, 휴가와 휴직의 사용을 부모가 공동으로 하는 것으로 하여 남성이 사용하지 않으면 그대로 잃어버리는 것이 되도록 해야 한다. 즉, 육아휴직이 1년이면 이 중에서 반드시 3개월은 남성이 사용해야 하는 것으로 하고, 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여성이 대신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없어지도록 하면 된다.


넷째, 근로상의 지원제도를 강제해야 한다.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이 양립함에 있어서 근로자가 처한 근로조건들은 영향력이 크므로 이러한 측면에 주목한 제도의 설계가 필요하다. 외국의 경우 탄력근무제(flexible scheduling) 및 재택근무제(telecommuting)가 기혼여성의 직무만족과 조직성과에 유의미하다는 결과들이 제시되면서 이들 프로그램의 도입 및 이용 수준이 증가하고 있다. 당연히 이러한 조치들은 단지 여성들에게만 적용될 것이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적용이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까지는 위와 같은 제도들이 제대로 활용되고 있지 못하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청구권, 선택적 및 탄력적 근로시간제, 재택근무제 등에 대해 기업이 부담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이러한 제도들을 적용하지 않았을 때 벌칙을 강하게 내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 차원에서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대체노동력에 대한 비용과 인력풀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다섯째, 보육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여러 연구들은 보육 및 교육서비스의 이용이 일-가정 상의 갈등을 효과적으로 감소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보육서비스의 경우, 서비스 이용에 불만족을 느낀다면 서비스의 효과는 낮을 수밖에 없다. 즉 우리나라의 경우 지속적으로 보육재정 및 보육시설의 확충이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질이 낮기 때문에 이용자들의 체감 만족도가 낮다. 보육시설의 대부분이 민간에 의해 운영되는 보육환경에서 보육시설의 질적(quality) 향상이 중요한 시점이며, 정책적 차원에서 단순한 양적 확대가 아니라 이제는 보육서비스의 질적 확대에 초점을 맞추어서 감시 및 평가시스템을 마련하고 관리해야 한다.


여섯째, 근로시간정책의 변화와 더불어, 이에 조응하는 인식과 판단의 기준들이 변해야 한다. 양육과 가사노동의 일차적인 책임은 여성이라는 성차별적 이데올로기를 해체하고, 일하는 부모를 비롯한 다양한 집단의 다양한 요구를 인정하고 지원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 되도록 해야 한다. 법에 명시된 여러 제도들이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기업 내에 가족친화적인 조직문화가 뿌리내리도록 하고, 근로환경에서 여성을 차별하는 행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족친화제도에 대해 정부가 기업들을 상대로 직장교육을 실시하고, 이 제도들이 기업의 성과향상을 위한 전략적 수단이 됨을 이해시켜야 한다.


누구나 자유롭게 일하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가지며, 자녀의 돌봄이나 여가를 위해 혹은 자기개발을 위해 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 이러한 기회와 권리는 보편적인 것으로 여성과 남성 사이에서 동등하게 실현되어야 하며, 어느 하나를 위해 다른 것을 포기해서는 아니 된다. 일-가정의 양립은 더 이상 수사적인 주장이 아니라 현실화시켜야 하는 당면과제이며, 이를 위해 정책적 실행력과 의지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기성의 ‘낡은 정치’를 교체하는 ‘복지국가 정당 정치’가 긴요하고도 중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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