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제주대학교 교수)
8월 2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국민에게 ‘복지국가 정당’의 창당을 제안하는 행사로 <복지국가 정당 대국민 제안대회>가 열렸다. 씽크탱크 형의 복지국가 운동단체인 사단법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앞장서고 우리사회의 분야별 전문가 및 실천가 33인과 복지국가 운동의 지역대표 7인이 제안자로 나섰다. 이날 제안자들은 ‘낡은 정치’를 교체하고 기존의 좌/우나 진보/보수가 아니라 국민행복을 위해 미래로 가는 “역동적 복지국가”의 새 시대를 열기 위해 국민의 ‘참여와 지지’를 지속적으로 호소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9월 2일 광주를 시작으로 2주에 걸쳐 전국의 주요 도시를 순회하는 <복지국가 정당 제안 설명회>를 개최하고, 국민의 참여와 지지를 모아낸 후 9월 하순 <복지국가 정당 추진위원회>라는 정당 플랫폼을 만들 예정이다. <복지국가 정당 추진위원회>는 기존의 지역주의 정당이나 인물 중심의 패거리 정당과 달리 ‘가치와 정책’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명시하고, 이에 동의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그래서 10월 하순 창당발기인 대회를 열고, 11월까지 창당을 완료할 예정이다. 왜 복지국가소사이어티와 40인의 제안자들은 지금 이 시기에 ‘복지국가 정당’의 창당을 제안하고 나섰을까?
지난 20년 사이에 불행의 늪에 빠진 대한민국
지금 대한민국은 불행하다.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이다. 1995년 이후 지난 20년 동안 모든 것이 나빠졌다. 그동안 승자독식의 시장만능주의 노선이 우리사회를 지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소득상위 10%가 전체소득의 45%를 가져가서 미국 다음으로 소득불평등이 심한 나라가 되었다. 남을 짓밟아야 성공할 수 있고,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경제사회에서 근로자의 절반은 비정규직으로 일터의 부당함과 해고의 두려움을 눈물로 참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국가의 역할은 취약해졌고 사회공공성은 축소되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경제규모가 세계 14위임에도 불구하고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 비중이 10.4%로 OECD 평균 22%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복지후진국에 머물고 있다. 그 결과, 청년은 ‘7포 세대’로 전락하여 희망 없이 살아가고, 노인은 53%가 빈곤해서 OECD 평균의 4배나 되는 노인빈곤의 고통을 겪고 있다. 여성은 일과 가정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당하고, 그래서 합계출산율 1.2로 OECD 국가들 중 꼴찌이다. 중장년층은 자녀의 사교육비와 폭등한 전․월세 마련에 소득의 상당부분을 써야 한다.
결국, 우리나라는 자살률이 인구 10만 명당 30명으로 20년 전에 비해 3배나 증가하여 하루에 50명씩 자살하는 자살공화국이 되었다. 그리고 ‘송파 세 모녀 사건’은 일상적인 뉴스거리가 되어버렸다. 지난 20년 동안 경제규모는 커졌지만, 양극화와 민생불안으로 국민은 더 불행해졌다. 국민이 불행한 시대다. 재벌대기업과 부자들은 엄청나게 더 큰 부자가 되었지만, 대부분의 보통사람들은 살림살이가 더 불안하고 고단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노력해도 안 된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고 있다. 특히, 청년의 좌절은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이대로는 안 된다.”
국민 불행의 본질적 이유는 ‘낡은 정치’
우리 국민이 이렇게 불행한 것은 ‘낡은 정치’ 때문이다. 1997년의 외환위기 이후 승자독식의 시장만능주의 노선과 정책을 채택하여 우리 국민을 양극화와 민생불안으로 내모는 그런 결정을 누가 내렸는가? 지난 20년 동안 10년씩 정권을 번갈아 잡았던 지금의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그들이다. 이들 거대양당은 지난 20년 동안 영호남 지역주의 정치와 인물 중심의 패거리 정치라는 ‘낡은 정치’ 질서를 유지하면서 스스로의 정치적 기득권과 재벌 대기업 등 특권층의 이익을 지키는 시대착오적인 낡은 정치행태를 보였다. 지금의 국민 불행을 초래한 데 대해 거대양당의 ‘낡은 정치’가 책임을 져야 한다.
또, 거대양당은 지난 2012년의 총선과 대선에서 스스로 공약했던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 등의 ‘복지국가’ 공약들을 이후 대부분 폐기하고 말았다. 처음부터 복지국가 공약을 지킬 의도도 능력도 없었던 여야 정치세력들이 시대정신으로 등장한 복지국가 요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결국에는 소모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여야 정치권이 우리 국민을 속였다. 이에 대해서는 정부여당이 더 크게 비난받아야 하겠으나 야당도 마찬가지로 비난받아야 한다.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지난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제1야당은 극도의 무능으로 일관했다. 그래서 국민의 정치 불신은 더 심해졌고, 대의정치는 불능상태에 빠졌다.
이것은 ‘낡은 정치’라는 우리나라 정치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선거제도인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에서는 당선자에게 간 표 보다 낙선자에게 간 사표가 더 많고, 거대 양당은 얻은 표 보다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한다. 여기서 영호남 지역주의와 인물 중심의 패거리 정치가 발호하고, 거대 양당 간의 적대적 공생구조가 만들어진다. 이런 ‘낡은 정치’ 질서에서는 민생불안을 해소하고 국민행복을 책임질 ‘복지국가 정치’가 불가능하다. 이제는 낡은 정치의 불판을 완전히 갈아야 한다.
이제는 가치와 정책 중심의 ‘복지국가 정당’ 필요
복지국가의 가치와 정책을 실천하는 ‘복지국가 정당’이 필요하다. 우리사회가 요구하는 가치와 정책을 옹호하고 지지하고 제도화하는 데 있어서 시민운동의 힘만으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생과 국민의 행복을 최우선의 목표로 삼는 ‘복지국가 정당’이 필요하다. 국민의 참여와 지지로 복지국가 정당을 만들어 기존의 낡은 정치 불판을 갈아야 한다. 복지국가 정당은 인간존엄, 연대, 정의의 가치를 실현하는 정당이다.
인간은 누구나 존엄한 존재다. 그러나 시장의 자유만을 강조하는 시장만능주의는 이를 무시한다. 따라서 복지국가 정당은 인간존엄을 보편적으로 보장하는 경제사회질서를 추구한다. 인간은 자유롭지만 동시에 상호의존적이며, 필수적 사안들을 서로 도와 해결하고, 타인과 함께 어울려 사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복지국가 정당은 연대의 가치를 제도화한다. 그리고 복지국가 정당은 정의로운 사회질서의 실현을 추구한다. 정의 실현의 핵심은 ‘공정한 기회균등의 원칙’과 ‘형평성에 의거한 재분배의 원칙’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또한 모든 국민의 행복할 권리 보장을 위해 복지국가 정당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 즉 ‘적극적 자유’를 보장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자아실현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며, 동시에 창의성을 극대화하여 경제의 역동적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복지국가 정당은 보편적 복지, 적극적 복지, 공정한 경제, 혁신적 경제라는 네 가지의 원칙을 촘촘하게 정책패키지로 제시하고 실천함으로써 민생불안을 극복하고 국민이 행복한 역동적 복지국가의 새 시대를 열어나가게 될 것이다.
합의제 민주주의와 역동적 복지국가가 우리의 미래 비전
‘복지국가 정당’은 합의제 민주주의와 역동적 복지국가를 우리사회의 미래 비전으로 추구한다. 우리나라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는 승자독식의 시장만능주의 경제체제를 낳는다. 따라서 지금의 양극화 경제체제를 수술해서 노동자와 서민의 민생불안을 해소하고 국민행복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낡은 정치’를 갈아엎고 다당제의 합의제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독일식 선거제도와 같은 비례성 강한 선거제도의 도입을 통해 모든 정당들이 득표율만큼 의석을 가져가도록 하면 다당제가 실현되게 된다.
그리고 다당제 하에서는 어떤 정당도 과반의석을 얻기 어렵기 때문에 정당 간의 대화와 타협이 원활해지는 합의제 민주주의가 새로운 정치질서로 자리를 잡게 된다. 그리고 이는 우리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구조개혁을 가능케 한다. 먼저, 사회경제적으로 승자독식의 시장만능주의 영역을 줄여가면서 협력과 타협에 기반을 둔 생산과 소비의 영역을 확장해나갈 수 있다. 지난 20년 동안 민영화로 축소된 공공부문을 확충하고 사회적 경제의 비중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게 된다. 일자리, 보육, 교육, 직업훈련, 의료, 주거, 노후 등의 복지는 사회권임과 동시에 사람에 대한 보편적 투자이므로 경제성장의 동력이다.
다음으로, 합의제 민주주의에서는 평화통일과 생태환경과 같이 우리사회에서 그동안 당위성은 충분히 인정되었으나 찬반의 갈등이 고착화된 영역에서도 국민적 합의를 단계적으로 도출할 수 있게 된다. 지금처럼 ‘승패 중의 하나’라는 극단적 결과가 아니라 단계적 합의 도출이 더 용이해지는 정치 구조적 환경이 만들어진다. 따라서 합의제 민주주의에서 복지국가 정당은 경제와 복지의 통합적 발전을 통해 경제성장과 복지확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것과 함께 평화통일과 생태환경의 가치를 합의적으로 추구하는 “역동적 복지국가”의 새 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
정체성 분명한 ‘복지국가 정당’으로 국민행복의 새 시대 열어야
‘복지국가 정당’을 통해 국민행복의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 복지국가 정당은 선거철에만 당원과 국민에게 굽실거리는 선거용 정당들과는 다르다. 복지국가 정당은 가치와 정책을 중심으로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진성당원들이 공천을 포함한 주요 결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소통하는 민주적 정당이며, 의사결정과정이 투명한 정당이다. 여기서 당원들이 민생문제를 일상적으로 논의하고 대안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정치는 재미있고 신나는 일상의 놀이가 될 수 있다.
복지국가 정당은 정체성을 기준으로 정책과 인물을 평가하고 선택한다. 따라서 당원을 대표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복지국가 실현을 위해 더 유능하게 노력하고 경쟁해야 한다. 복지국가 정당은 이런 새로운 정치문화를 가능케 한다. 이렇게 되면 기존의 거대양당은 표를 얻기 위해서라도 복지국가 정당을 따라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점차 우리나라에서 ‘낡은 정치’는 사라지고 국민행복 실현의 새로운 정치가 자리 잡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대한민국은 ‘복지국가 정당’ 없이 국민 불행을 해결할 다른 방법이 없다. 이것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와 제안자 40인이 국민에게 ‘복지국가 정당’의 창당을 호소한 이유다.
이미 해체되고 있는 불행한 정치공동체 대한민국을 연대와 인애가 넘치는 인간존엄의 정의로운 정치공동체로 거듭나도록 해야 한다. 기득권 수호의 ‘낡은 정치’를 국민 행복의 복지국가 정치로 바꾸어야 한다. 이것이 시대정신이다. 그리고 복지국가 정당을 통해 기존의 ‘낡은 정치’를 교체하고 국민이 행복한 “역동적 복지국가”의 새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민생불안을 극복하고 국민 모두의 행복할 권리를 보장하는 “역동적 복지국가”의 새 시대를 열기 위해 복지국가소사이어티와 전문가 40인이 제안한 복지국가 정당이 우리 국민의 참여와 지지라는 거대한 에너지를 흡수하여 반드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길 간절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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